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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노숙여성, 그녀들이 있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12-24 10:07  |  30 읽음

글_임병안 중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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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여성 노숙인의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 '그녀들이 있다' 상영회에 다녀왔습니다. 대전역 앞 중앙로에 위치한 아트시네마는 뜻 있는 사람들이 단촐하게 모여 작은 콘서트를 즐기고 영화를 관람하며 토론하기에 알맞은 장소였습니다. 저는 신문사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만,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문자를 읽는다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시대에 다큐멘터리만큼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큐영화 '그녀들이 있다'는 여성 노숙인이 처한 인권환경을 조명했습니다. 일정한 거쳐 없이 길거리에서 숙식하는 상황뿐만 아니라 최소 주거면적 미만의 환경에서 지내는 이들 모두를 노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하상가나 하천변에서 자리를 펴놓고 밤을 지새우는 이들부터 소위 쪽방이라고 부르는 비적정 주거시설에서 생활하는 분들도 홈리스 노숙인입니다. 그 중에서 노숙을 하는 여성이라면 잘 상상되지 않습니다. 상상이라는 게 눈으로 본 것을 재구성하는 것이라면, 여성 노숙인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녀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녀들이 있다'에서 우리가 그녀들을 볼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됩니다. 다큐에 등장하는 별이라는 애칭을 가진 40대 여성은 머리를 짧게 자른 빡빡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머리를 짧게 자른 이유는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서 입니다. "남자처럼 보여야하니까. 남자가 아니면 못 사는 곳이에요"라고 말을 합니다. 30대 노숙 여성은 화장실에서 자고 햄버거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위협할까봐 무서워서 도망만 다니면서 말이죠.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마저 여성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곳인지 모릅니다. 50대 여성은 무료급식소에 갔다가 "꼴린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남성들때문에 성적 수치심만 갖고 돌아온 이후 다시는 무료급식소를 이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노숙인 전문 보호시설에 찾아가도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 화장실과 샤워실을 함께 사용하는 환경에서 불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는 다큐에서 여성이 어떻게 노숙의 삶을 시작했는지 자신의 삶을 인터뷰하는 부분에서 가장 놀랐습니다.


다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노숙인들은 유년기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결혼 후 남편과 시댁 식구로부터 폭력과 위협에 노출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밥을 제대로 못한다며 고아원에 가라고 대놓고 쫓아내는 아빠를 등지고 집을 나온 여성노숙인과 아버지에게 맞아서 병원에 몇 차례 실려 갈 정도로 폭력에 노출되었던 삶을 살았던 또다른 30대 여성의 이야기는 가슴 찡하게 다가옵니다. 게으름과 실패, 포기 등의 단어를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이것은 다분히 당사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접근방식이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위험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여성들이 집과 가정을 잃고 노숙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노숙인 보호시설이 있고, 이들이 다시 일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매일 대전역과 하천을 다니면서 노숙하는 이들의 겨우내 건강을 보살피는 아웃리치도 하고 재활과 보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숙인 중 여성들이 지친 삶을 추스르고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머무를 공간은 우리지역에도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시보호 쉼터는 대전역 근처에 있으나 이 역시 화장실 등은 남성 일시보호쉼터와 함께 사용하고 여성 쉼터에 들어가려면 남성 쉼터 앞을 지나가는 구조라고 합니다.


'그녀들이 있다'를 촬영한 김수목 감독은 이날 상영회에서 대전시민들과 만나 "촬영 내내 화가 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폭력과 방임 속에서 노숙의 삶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인데 사회는 그들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가 몹시 속상했던 것입니다. 

우리 누구나 홈리스가 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이들 홈리스 여성들의 인권환경이 곧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인권수준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지역에서 지금도 눈에 띄지 않게 노숙생활에 처한 여성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녀들에게 관심을 쏟고 적정한 보호를 제공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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