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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만사는

추명구(대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무처장), 오임술(민주노총 대전본부 노동안전국장),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이채민(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임병안(중도일보 기자)님과 같은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생활하면서 느끼는 인권현안에 대해 2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칼럼입니다.

하나도 즐겁지도, 재밌지도 않습니다.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19-12-11 10:30  |  58 읽음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연구원 이채민



예전에 입시 학원에서 수년간 강사노동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수업을 맡았는데, 한 가지 사실은 아이들의 모습이 부모와 놀랍도록 같다는 점이었다. 학원은 학교와 달라서 조금이라도 아이가 평상시와 다르면 그때마다 부모님께 (주로 엄마) 연락을 취했다. 비록 전화 상담이지만 통화 속 말투까지 닮은 모습을 보며 무섭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느낌이 기억난다. 그렇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인 동시에 현재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들을 살펴보면 그게 우리 현실의 반영일 때가 많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의 유행어다. 당시엔 주로 00 콘서트 유행어를 따라하곤 했는데 수업 도중 개그프로 중 하나인 XXX 학당에서 누군가를 놀리는 말이 주로 사용하곤 했다. 그럴 땐 주의를 준 기억이 있다. 그런다고 안할 아이들이 아니지만 적어도 수업 시간에는 장난으로라도 다른 아이를 놀리지 않도록 했다(주로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아이들은 재밌다고 낄낄거렸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그 재미라는 것은 주로 가해자가 정한다. 가해자를 둘러싼 몇몇 그룹의 아이들만 즐겁고 지칭당하는 아이는 모멸감을 느껴 얼굴이 빨개지거나 혹은 (힘의 균형이 같을 경우) 맞서기도 한다. 그렇다. 모두가 즐겁지 않고, 어느 한쪽만이 즐겁다면 그것은 하나도 즐겁지도 재밌지도 않은 것이다.


2019년을 한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아마도 넘쳐나는 ‘혐오’로 기억될 것이다. 몇 년 전 LH 아파트의 브랜드린 ‘휴먼시아’와 ‘거지’의 합성어로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휴거’를 시작으로 이제는 구체적으로 소득수준으로까지 확산된 모양새다. 월수입 200만원 이하인 사람은 ‘이백충’, 월세 사는 거지라는 의미의 ‘월거지’로 불린다. 이뿐이랴.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성에겐 ‘맘충’ , 분위기 파악 못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진지충’ , 한국남자의 줄임말인 ‘한남충’ 까지.. 진정 모두 벌레가 돼 버린 듯 하다. 이 혐오의 한 축엔 ‘성’이라는 변수가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어느 때는 계급보다 우선하며 무엇보다 강력하다.

이러한 냉소와 혐오의 단어들이 만들어진 이유를 실업과 과도한 경쟁에서 찾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장기적인 저성장과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불안함이 혐오를 생산해내는데 주로 자신들보다 약한 계층 (당한다해도 대항하지 못할 계층 혹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는)에게 행해지는 폭력이라는 것이다. 만연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혐오 중 ‘여성’은 아주 간편한 혐오 도구로 이용된다. 최근 한 치어리더에 초등학생이 올렸다는 충격적인 능욕 글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여성 혐오가 만연된 사회에서는 성매매가 일상이 되고, 리벤지 포르노때문에 많은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것은 그저 약한 멘탈 때문으로 어물쩍 넘어가게 되며, 세계 최대 아동음란물 사이트 사건으로 검거된 310명 중 223명이 한국남자라라는 충격적 사실과 22만여 건의 아동 음란물을 유통 판매한 혐의가 고작 1년 6개월이 된다. 같은 사이트에서 영상 1회를 다운받아 징역 3년 2개월을 선고받은 외국인과 형량을 비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2019년 10월 21일자 스브스 뉴스, ‘아동음란물로 나라 망신 제대로 시킨 한국인들)


또한 스무명 남짓의 여학생들을 수십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교사는 1심에 이어서도 2심에도 집행유예를 받는다. 파면당한 점을 고려했다지만 죄질로 봤을 땐 납득할 수 없는 판결임엔 분명하다. 그리고 연인관계 속에서 협박, 강요, 상해, 재물손괴 등은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게 된다. 당시 명시적 동의없이 촬영한 것은 맞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한 것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최근 한 어린이집에서 5세 남아 동갑의 여아를 성추행했다는 이야기가 ‘단순 호기심’ 혹은 “발달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모습”(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12월 2일 발언) 만으로는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 어디 민족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제대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여성들의 죽음(사회적 죽음, 능욕, 혐오표현) 역시 셀 수없는 오랜 기간동안 되풀이 돼 왔다.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이 죽어야 될까. 부디 더이상 여성혐오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시선(“앞이 창창한 청년인데, 가장이므로.. ,초범이라.., 장난이니까, 어린 아이라서, 성장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 따위로 해석되지 않는 2020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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