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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장애인 시위가 드러낸 ‘자본의 시간’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2-04-06 19:23  |  143 읽음

글_강수돌(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2021년 말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와 농성이 거세게 전개됐다. 특히,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출근시간대에 수도권 전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사이에 휠체어 바퀴를 넣는 방법으로 열차 출입문 작동을 저지해 열차 운행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요구는 장애인 이동권과 생활권을 제도적으로 보장, 예산에 반영하라는 것!

  이들은 대통령 후보들이 대선 토론에서 장애인 예산에 대해 논하면 시위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2021년 12월 초부터 서울지하철에서 시위가 시작됐다. “출근길 시민 불편” 등 여러 “욕의 무덤”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장연 시위가 계속되자, 2022년 2월 21일 대선 토론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약 1분간 장애인 예산에 대해 언급했으며, 2월 23일 서울역 시위 현장을 심 후보가 방문하면서 3월 2일까지 출근길 시위는 잠시 중단됐다. 한편, 대선 토론이 열린 2월 25일엔 공항철도 퇴근길 시위가 진행됐다. 2월 28일 전장연은 “만약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안철수 등 대통령 후보 중 누군가 집권할 경우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약속을 한다면 출근길 선전전은 멈추겠다.”고 하며, 상황의 극적 변화가 없을 시 시위를 장기적으로 지속할 뜻을 밝혔다. 3월 9일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뒤에도 별 다른 진전이 없자 3월 24일부터 시위를 재개했다. 마침내 3월 30일 대통령직 인수위 면담 이후 출퇴근 시위 대신 삭발 투쟁이 전개됐다. 전장연은 인수위 측에서 4월 20일까지 답변이 없거나 원론적 답변만 내놓을 경우 시위를 재개하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장애인 시위가 불러온 시민들의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표면적으로 드러난 법률 위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언론이 이런 식이라면 장애인들이 “욕의 무덤”에 들어갈 각오를 하고 진행한 집단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전장연 시위에 대한 시민사회 및 정치권 반응과 관련, 크게 세 측면에 대해 성찰한다.


  첫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전장연 시위가) 지하철 출입문에 휠체어를 끼워 넣고 운행을 중지하도록 해서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 본인들의 뜻을 관철하는 것은 매우 비문명적”이라 발언한 부분이다. 아무리 정권 장악을 목표로 하는 정당 조직이라 하더라도 유권자 내지 국민의 호응과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이 발언은 과연 정당 대표의 발언인지 의심스럽다. 이 대표의 눈에 전장연 시위가 “비문명적”이라는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점, 또 하나는 휠체어를 지하철 출입문에 끼워 운행을 방해한 점. 그러나 이른바 유럽 ‘문명’ 국가들은 그런 불편과 불법, 합법을 넘나들며 전개한 온갖 사회운동과 ‘68 혁명’ 등에 힘입어 오늘날 우리가 부러워하는 복지사회를 만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불법이나 파괴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 점(불법과 파손)만 부각해서 목숨 건 당사자들의 행위를 비난하고 무시한다면 그런 태도야말로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이다.


  둘째,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타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얼핏 들으면 정말 맞는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비판이 정당하려면 그 속에 나오는 “자신”과 “타자”가 동등한 조건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장연 시위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은 휠체어가 아니면 마음대로 이동하기도 어렵고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다. 이른바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들은 마치 옥살이하듯 삶의 통제를 받는다. 게다가 장애인의 이동권과 생활권, 교육권, 노동권 등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20년 이상 지속되고 있음에도 정부 예산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기자들과 시민들을 향해 “출근길 지하철을 타는 것 때문에 수많은 욕설과 혐오 표현은 감당하겠다. 출근길 시민들의 욕설을 이해한다.”면서도 “비록 ‘욕의 무덤’에 들어가서라도, 대한민국 사회가 20년을 외쳐도 중증장애인들의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무관심과 불평등의 사회는 변해야 한다.”고 외치는 절박한 심정을 역지사지로 느껴보라.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들, 얄팍하고 형식적인 논리를 근거로 장애인(또는 사회적 약자) 동료 시민들의 애환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면 그 무슨 소용이랴?


  셋째, 나는 이번 전장연 시위가 사회적 논란을 키우게 된 까닭이 ‘출근길’ 시위라는 점에 주목한다. 왜 그런가? ‘출근길’이란 압도적 다수의 직장인들이 일하러 가는 길 아닌가. 이게 왜 문제인가? 그것은 돈 받고 일하는 직장에 정시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직장에 출근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해 ‘신성시’한다. 개인적으로는 안정된 소득을 확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고, 사회적으로는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잘 보면 전장연이 공항철도에서 ‘퇴근길’ 시위를 했을 때는 언론이나 시민들이 그렇게 악의적 시선을 보내진 않았다. 왜? 퇴근길이야 직장인들이 약간의 자기 시간을 희생하면 되니까. 바로 이 지점에 작은 비밀 또는 은밀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본의 돈벌이 과정에 지장을 초래하는 걸 금기시한다는 점! 출근길엔 절대 늦어서는 안 되고, 자본의 시간을 절대 잠식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누구도 도발해서는 안 되는 체제이기에! 만일 누군가 그 체제를 문제 삼는다면 그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빨갱이일 것이다! 바로 이 ‘낙인의 두려움’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따라서 누가 뭐라 하건 자본주의 안에서 출퇴근 열심히 하면서 돈 많이 벌고 상품을 많이 소유, 소비하는 게 나도 좋고 경제도 살린다고 믿는다. 바로 이것이 <중독의 시대>(개마고원, 2018) 또는 <중독 공화국>(세창출판, 2021)에서 말하는, ‘체제 동일시’ 내지 ‘강자 동일시’ 심리다. 그러나 이 심리는 결국 우리가 자본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보통 우리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장애인이 휠체어를 굴리며 힘겹게 타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안쓰러우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답답함을 느끼기 쉽다. 왜 답답할까?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리가 속도에 중독되어 살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자본이 만들어낸 속도다. 사람의 속도는 어린아이가 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긴다. 상기해 보라. 7~8개월짜리 아기가 막 기기 시작할 때의 경이로움을! 또 그 아이가 벌떡 일어서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할 때의 기적 같은 순간들을! 그러나 아이가 자라서 학교에 가고 운동장에서 100미터 달리기 경쟁 같은 걸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자본의 속도’를 배운다. 자본의 관점에서는 절뚝거려서도 안 되고 수시로 쉬어서도 안 된다. 오로지 ‘더 빨리’ 또는 ‘최고 빨리’를 달성하라고 한다. 그 사이에 우리는 자본의 속도를 내면화한다. 이제 ‘뒤처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더딘 속도로 움직이는 걸 보고 스스로 갑갑하거나 답답함을 느낄 때,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자본의 속도에 중독되어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아무리 짧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비난’의 시간이 아니라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가 평소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내면화하고 당연시한 탓에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리고 만, ‘사람의 시간’, 곧 인간성을 되찾는 길이다.


  이런 성찰과 통찰에 이른다면, 우리는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 전장연 동료 시민들의 절박한 호소와 시위는 결코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타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문명적” 행위이거나 “다수 시민을 볼모로 자기 이익을 관철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삶의 패턴과 속도에 중독되어 무엇이 건강하고 무엇이 병든 것인지 분별력조차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불감증을 일깨우는 죽비소리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이 죽비소리에 제대로 반응하고 연대할 때 정책이나 예산 문제도 하나씩 풀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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