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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땅에 대한 단상斷想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1-03-25 09:57  |  129 읽음

                                                            글_ 좌세준(변호사)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땅을 갖기를 원하는 가난한 농부 바흠에게 주어진 거래 조건, “하루 동안 걸어서 해지기 전에 출발한 언덕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표시한 땅 전부가 모두 당신의 것”이라는, “땅만 있으면 악마도 두렵지 않다”는 농부 바흠에게 이 기막힌 거래 조건 뒤에 숨은 악마의 장난은 보이지 않습니다. 바흠은 자신이 출발했던 작은 언덕 위에 햇살이 살짝 남아 있을 때 겨우 되돌아오지만 입에서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서 되돌아오면 더 많은 땅을 얻게 되리라는 바흠이 하루를 걸어 차지한 땅은 바로 그가 묻힌 구덩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키와 같은 3아르신”에 불과했습니다. 


 ‘신대륙’ 북아메리카에 살던 원주민, 난데없이 ‘인디언’이라 불리게 된 사람 시애틀 추장은 자신을 찾아온 얼굴 흰 추장에게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하지요.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 팔 수 있단 말인가?” 


시애틀 추장이 연설을 시작하면서 검지로 가리킨 “저 하늘”,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 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모두가 신성한” 이 대지에 금을 긋고 울타리를 치겠다니. 


사실 “땅에 울타리를 치는 것”을 얼굴 흰 추장들에게 알려준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오기 전 자신들이 살던 나라 잉글랜드에 존 로크(John Locke)라는 사람이 있었지요. 이 사람이 《통치론》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이 땅을 갈고, 씨 뿌리고, 가치를 높이고, 재배하고, 이용하는 한, 그 땅의 산물은 그의 재산이다. 말하자면, 그는 노동을 통해서 공용토지에 울타리를 치는 것이다.” 


생명과 자유, 재산권은 신이 준 것이므로 정부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지금은 상식이 된 이야기를 하면서 로크는 유독 ‘재산권’을 강조합니다. 얼굴 흰 추장들은 자신들이 ‘발견했다’는 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로크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인용한 ‘선언’과 ‘헌법’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로크는 같은 책에서 이런 말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회에 속하는 인간은 재산을 소유하고, 공동체의 법률이 인정하는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공동체의 법률이 인정하는 소유물”이라는 말에 밑줄을 그어야 합니다. 생명과 자유 는 물론이요 재산권도 신이 준 것, 다른 말로 ‘자연권’이기는 하지만 사람은 사회에 속하는 이상 공동체가 정한 ‘법률이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재산권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로크가 살던 시대에 재산이라 하면 사실상 ‘땅’을 말하는 것이었으므로, 위 말은 결국 “인간은 법률이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땅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시애틀 추장에게는 여전히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땅과 집에 대한 법률적 규제가 나올 때마다 ‘위헌’이니 ‘위법’이니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반드시 되새겨 봐야 할 대목입니다.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1891년 교황 레오13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저희는 모든 사람이 아무 때나 어떤 토지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공동소유 방식으로 평등한 토지권을 구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토지를 균등하게 분할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균등 분할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 분할된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저희는, 개인의 토지 이용을 인정하고 증여, 매각, 상속의 자유도 완전히 허용하는 가운데 토지에 과세하여 공공 목적에 사용하자고 제안합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새로운 사태 Rerum Novarum>라는 회칙을 발표합니다. ‘노동헌장’이라고도 하는 이 회칙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출발이라 평가할 정도로 의미있는 문헌입니다. 이 문헌에서 레오 13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토지가 비록 각 개인 소유로 분배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이들에게 공동 이익과 편의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회칙 6>


 앞서 살펴본 로크의 말보다 더 강하게 토지가 공공재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헨리 조지에게는 위와 같은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 봅니다. 헨리 조지는 토지소유권과 사유재산권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 위 회칙에 대해 정중하고 유려한 문체로 정리한 자신의 의견을 교황에게 제시합니다. 헨리 조지의 생각을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토지를 사적으로 사용하되 그 토지가 사용자에게 주는 특별한 이익의 가치를 공동체에 납부하도록 한다.”


헨리 조지는 사회주의를 비판한 사람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헨리 조지는 ‘토지의 균등 분할’이나 ‘공동소유’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30여 년 전 헨리 조지의 발상을 현대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들의 신도시 예정지 투기 사건으로 촉발된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구체적 대안을 찾기 위한 나 자신의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땅에 대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상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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