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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스님과 돈, 그리고 집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11-18 16:46  |  284 읽음

강수돌(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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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tvNⓒ 


  “식당에서 밥을 먹는 중에는 모릅니다. 다 먹고 일어나야 얼마나 과식했는지 비로소 알게 돼요.” 참 멋있는 말이다. 3백만 부나 팔렸다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나온다. 그렇다. 굳이 스님과 같은 수행자가 아닐지라도 우리가 제대로 잘 살아가려면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너무 모자라도 문제고 너무 지나쳐도 문제다. 그 적정선을 잘 지키는지, 그 적정선을 잘 만들어내는지,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 쉽지 않지만 늘 애써야 한다.


  그런 혜민 스님이 갑자기 논란에 휩싸였다. 발단은 11월 7일 어느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혜민 스님의 자택이 공개되면서였다. 물론, 그 전에도 혜민 스님을 문제 삼은 경우도 있었지만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언론 덕(?)이다. 그 논란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스님이 자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것, 다른 하나는 (보통사람은 결코 누리기 어려운 호사로) ‘남산타워 뷰’가 보이는 삼청동의 멋진 집에 산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방송을 보고 “스님이 그런 집에 살아도 되는 거야?” 내지 “와우, 부럽다, 부러워!”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스님 세계에서는 좀 더 다르게 보였나보다. 실제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현각 스님은 11월 16일에 페이스북에 혜민 스님의 사진과 함께 글을 남기며 맹비판했다. 혜민 스님이 이제는 (수행자가 아니라) “연예인일 뿐”이라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일 뿐”이라 했다. 더 심하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품으로)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일 뿐”이라 막말을 했다. 나는 혜민 스님의 다른 모습에도 적잖이 놀랐지만, 현각 스님의 날선 비판에는 더욱 놀랐다. 스님의 칼날이 학계의 칼날보다 더 날카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프린스턴대를 나온 혜민 스님이나 예일대와 하버드대를 나온 현각 스님의 대중적 인기를 보면서 맘속으로 불편한 느낌들이 있었다. 일단 두 분 다 영화배우처럼 너무 잘 생긴 데다, 둘 다 이른바 아이비리그 (명문 사립대) 출신이라는 점도 소박함을 강조하는 불교와 잘 안 맞는 것 같고, 게다가 사회구조의 문제보다 마음가짐의 문제를 강조하는 종교 본연의 모습 역시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에 현각 스님이 혜민 스님을 놓고 작심 비판하는 모습을 보고 현각 스님을 달리 보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방송 이후의 다양한 비판과 현각 스님의 꾸짖음에 혜민 스님이 진심어린 참회의 뜻을 밝히며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오늘부로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혜민 스님의 진심 사과를 보고 또, 두 스님 사이에 70분 정도의 긴 대화(통화)가 오간 뒤에, 현각 스님 역시 마음을 돌려, 혜민 스님의 “순수한 마음을 존경한다”고 했다는 점이다. 무려 1시간 이상 대화 속에서 “사랑과 상호 존중, 깊은 감사”를 느끼며 앞으로도 서로 “연락을 하면서 서로 배우기로 했다”는 것. 현각 스님은 혜민 스님을 일컬어 “인류에게 줄 선물이 많고 성실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라 말했다. 그리하여 두 스님은 “영원한 달마 형제”임을 재확인했다. 얼마 전만 해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이라든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품으로)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이라 한 말과는 180도 반대되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생각하고 실천할 점이 있다고 본다. 


첫째, 자세한 경위는 잘 모르지만 스님이 ‘건물주’가 된다는 건 아무래도 미심쩍다. 어느 언론에 따르면 혜민 스님은 현 거주 건물을 8억에 사서 9억에 팔았다. 판 대상이 선원인데 그 주인이 스님 자신이라는 얘기도 있다. 자기 스스로 시세차익을 챙긴 셈이다. 형식적으로는 임대라는데 그것도 이상하다. 여하간 (무)소유와 관련한 스님의 모습이 미심쩍다.


  둘째, 이런 모습을 어찌 스님에게만 요구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는 죽을 때 빈 손으로 간다. 그러나 어찌하여 이렇게도 많이들 소유하고 소비하려 하는가? 적정 생활의 기준을 고민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겠다. 


  셋째, 현각 스님이 혜민 스님을 혹평했다가 다시 용서하고 사랑을 재확인한 점도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비판할 수 있고, 비판에 성찰과 사죄를 할 수 있고, 또 그 사죄를 수용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사랑이 담긴 비판이어야 하고, 진심이 담긴 사죄여야 한다.  


  혜민 스님의 책에 나오는 말처럼 “삶은 어차피 연극인데, 이왕이면 좀 멋들어지게 연극합시다.”라는 말이 좀 멋들어지게 맞아 드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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