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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 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양해림(충남대 교수), 장원순(공주교대 교수), 좌세준(변호사)님이 돌아가며 2주에 한 번씩 인권현안에 대해 기고를 하는 전문가 칼럼입니다.

역대 충남도지사 중 친일반민족행위자는? 기록 삭제하거나 친일행적 기록해야

작성자대전충남인권연대 작성일20-02-18 10:21  |  47 읽음

_심규상(오마이뉴스 기자) 

 


도지사라는 직책이 처음 생긴 때는 1910년이다이전에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조선총독부 초대 충남도지사(처음엔 도장관이라고 했다)는 박중양 지사(朴重陽,1910.10.1.~ 1915.3.31).

 

그는 조선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수양아들이다충남도지사 시절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임천군수(부여)를 파직시키고 후임에 친일파 김갑순을 발령했다또 충남도지사 재직시절 직원의 부인은 물론 여승을 겁탈하는 등 무소불위로 권력을 남용했다. 1905년 농상공부 주사, 1907년 대구 군수평안남도관찰사 겸 세무감, 1908년 경상북도관찰사를 지냈다충남도지사를 시작으로 황해도지사,충청북도지사,중추원 칙임참의중추원 고문중추원 부의장,조선임전보국단 고문등을 지냈다.

 

그는 1935년판 조선공로자명감>에서 일본제국주의의 조선통치 25년간 최고의 공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반민특위 또한 그를 "여타 친일파들과는 달리신념 자체가 친일이었던 사람"으로 평가했다.

 

반민특위는 박중양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체포했다하지만 형무소 간수들의 협력으로 비단이불을 덮으며 생활했다.

"박중양은 일본인 부인이 형무소 앞에서 간수들을 붙잡고 며칠을 울며 호소하는 읍소작전 끝에 비단이불을 차입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경향신문(1977.9.19)>

 

이후 박중양은 병보석으로 석방돼 천수를 누렸다.


해방직전까지 14명이 충남지사를 했는데 박중양을 포함 11명이 한국인이다고위관료로 식량공출이나 노무자징용학병권유징병제독려 등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니 모두 친일반족행위자다이중 박중양 못지않은 A급 반민족행위자가 있으니 이성근 (李聖根,1939.5.17.~ 1941.5.31)이다.

 

이성근은 충남도지사에 앞서 조선총독부 경찰국 등에서 근무하며 의병 활동을 탄압했다그 공로로 1920년 경시로 승진했다평안북도 경찰고등과장으로 일하며 국경지대에서 독립운동가를 체포,살해했다친일 경찰 김덕기의 상관이기도 하다. 1935년판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서 박중양과 함께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명에 이름을 올렸다충남지사 이후에도 조선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사장을 했고친일단체에도 가담해 조선학생들의 학병참여를 권유하는 연설을 했다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됐지만 반민특위가 해산되자 곧 풀려났다.

 

해방이 됐지만 충남도지사는 한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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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_충남도청 누리집 갈무리)

 


2대 충남지사를 지낸 진헌식(1951.12.17~52.8.29,충남 연기 출생)은 해방직후 반민족행위자처벌특별위원회에 회부됐던 사람이다. 진헌식(1902~1980)은 일본주오대학 법학부 학사와 보전교수,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과 충남지사,내무부장관(10)을 역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금광() 이사를 맡았다. 조선금광은 일본인들이 설립됐는데 금광을 개발, 지하자원을 수탈해 이익을 취했다. 특히 그는 왜경 경무국장을 중심으로 결성한 내선인의 융화친목을 목적으로 한 청교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또 잡지 동양지광에 일제에 협력을 요구하는 글을 실었다. 이 일로 해방직후 국회의원 신분으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반민특위는 "민족을 해친 현저한 사실이 없고 고향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해 다수 민중의 용서를 받았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했다. 이런 논리라면 당시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 누구도 죄가 성립되기 어렵다. 실제 반민특위는 당시 반민족행위 혐의로 소환한 국회의원 모두에게 비슷한 이유로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6대 김학용 충남도지사와 제 7대 김홍식 도지사는 친일반민족행위가 분명하다.

김학용(金鶴應, 일본식 이름 金子薰, 1899.1. 25~ ?)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이후 정부 관료를 역임했다. 1955년 충북도지사를 거쳐 1958년 충남도지사(7.29-1960.4.30)를 역임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 관리로 충북도 보은군수, 제천군수, 옥천군수를 역임했다. 해방 후에는 충북도 지방과장, 충북도 내무국장(서기관), 충남도와 경기도 내무국장을 거쳤다. 이후 충북지사와 충남지사를 맡았다. 또 충남지사 재임 중 4·19 혁명이 일어나 3·15 부정선거의 충남 지역 책임자로 기소됐다. 19613월 언론보도를 보면 김학용 지사는 부정선거에 관여한 혐의가 인정돼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친일행위에 반헌법행위자까지 2관왕을 기록했다.

 

뒤를 이은 김홍식 도지사(1960.5.2~1960.10.7) 또한 일제강점기때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1934)와 행정과(1935)에 합격해 평남 양덕군수에 임명됐다. 이때 황민화 운동을 주도하며 친일잡지 <내선일체>를 발간했다. 또 내선일체실천사 평남도지사의 고문을 지냈다. 이후 평안남도 개천군수, 경기도 부천군수를 역임했다. 해방직후 미군정기에 경기도 광공부 광공부장, 변호사 개업, 사업위원으로 일하다 충남도지사까지 지냈다. 조선총독부의 군수로 일하며 내선융화를 적극 주도한 점에서 친일반민족행위가 인정된다.

 

경기도는 지난 1, 역대 도지사의 친일 행적을 홈페이지와 대회의실에 걸린 역대 도지사 액자에 친일 행적을 기록했다. 전북도도 친일 행적이 확인된 제11대 임춘성(1960610), 12대 이용택(19601012) 도지사의 사진을 청사에서 철거했다.

 

충남도 홈페이지와 대회의실에는 여전히 도민을 삶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수탈한 이들이 '역대 도지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친일잔재 청산과 도민의 알 권리를 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삭제, 철거하거나 친일행적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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